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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간을 낭비한 죄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흘러 임인년 흑 호랑이 해에서 계묘년 검은 토끼 해로 넘어왔다. 가슴 벅찬 황금 빛으로 물든 새해를 맞은 감흥보다는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심리적 부담과 압박감이 더 컸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1년이 휙 지나가 버리니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새해가 왔나 보다 했더니 또 어느새 봄이 왔다. 속절없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지난 해는 건강이 안 좋아 병원에 학교 다니듯 들락거리며 살았다. 돌이켜 보니 건강 관리를 잘못하여 시간을 허비하며 산 것 같아 가슴 속이 허전하다.     학창시절 책상 머리맡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에 붙어 있다는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라는 명언과 함께 ‘시간은 금이다’라는 글귀를 붙여 놓고서 나를 다그쳤다. 때를 놓치지 말고 주어진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라는 경고를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며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산 건지, 아니면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는지 성공은커녕 오히려 남들보다 뒤쳐진 느낌이다.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SNS)에 오나시스의 후회라는 것이 떠돌았다.  그가 돈은 많이 벌어 그리스의 선박 왕이 되었지만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 마리아 칼라스, 미국의 대통령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했다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서 “나는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 고 후회하며 죽었다고 한다.  그녀들이 사회적 명성은 높았지만 한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데는 미흡했던 것이다.  오나시스는 그릇된 여성관으로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라면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빠삐용’을 말 안 할 수가 없다. 어느 날 그는 꿈에서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 가고 있었다.  저 멀리 맞은 편에 재판관과 배심원이 앉아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결백을 주장하며 살인하지 않았다고 울부짖는다. 재판관은 말한다. “그래, 그건 맞다. 너는 살인죄로 기소된 게 아니다.  네가 저지른 죄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악의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라며 유죄를 선고한다.     그토록 무죄임을 항변하던 빠삐용은 힘없이 자기 죄를 시인한다. 결국 빠삐용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자유를 찾아 죽음의 섬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생각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더 편안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살았는가’ 라는 거였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지금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빠삐용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나 역시 재판관과 배심원들의 만장 일치로 유죄가 될 것이 확실하다. 지난 여름 병석에 누어 지내는 동안 내가 낭비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많은 것들 중에 세가지만 압축해서 적어 보지면 첫번째는 건강관리를 잘 못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학교 때는 방학 30일 동안 꼼짝 안하고 집에서만, 그것도 방에서만 지내기 일 수였다.  젊어서야 기초 체력이 있으니까 그래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이 들어서는 운동이 필수다.  체력단련에 게을렀던 탓에 몸이 약해졌다.     두 번째로는 성격이 소심해서 지나간 일에, 또 앞으로 닥칠 일 때문에 너무 걱정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들에 짓눌려 많은 시간을 허송세월했다. 예를 들면 아는 시험 문제를 실수로 틀리면 몇 날 며칠을 속이 상해서 끙끙 앓거나, 항상 주변 사람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칠 것인지 걱정하면서 전전긍긍했다.      세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이기적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을 위해 무엇을 한 적이 있었던 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서 앞장서서 발벗고 나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힘이라도 보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것들이 모두 내가 인생을 낭비한 것들이었다.     비록 내가 의도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을 낭비한 죄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악의 죄다”라는 영화 속 재판관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그나마 병석에서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낭비했는지 절실히 깨닫고 반성을 했다. 그러고 보면 아파서 누어 있는 시간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주 버린 시간은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위로가 됐다.     최근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지대에 강진이 발생했다.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사회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날로 급증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가슴이 메인다.  어떻게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까?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의 울부짖는 현장 사진을 매스컴에서 보며 마음만 괴롭다. 강진이 발생하기 바로 전에 수백 마리의 새 떼가 울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관측됐다고 한다. 새의 발에는 예민한 진동 감지 기관이 있어 지진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새 만도 못하게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을 공연히 원망해 본다.     뭔가 거창하게 큰 일을 행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사랑을 베푸는 것, 작은 선함이라도 실행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헛되이 사는 것도 아닐 터인데 그게 참 어렵다. 어찌해야 좋을 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에밀리 딕킨슨)       인생을 낭비한 죄로 자책하며 살지 않기 위한 나의 결단은 무엇인가?  새해 새 봄의 내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배광자 / 수필가수필 시간 낭비 하버드 대학교 고통 하나 재산 피해

2023-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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